전쟁에 맞서는 농부의 마음 [똑똑! 한국사회]
밭에 내다 심어 이제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한 봄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공심채, 채두, 감자 등의 채소들. 원혜덕 제공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4월도 저물고 있다.
4월은 영어로 ‘꽃이 열리고 땅이 열리는 달’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굳이 영어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한여름같이 더웠다가 느닷없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들이 많은 가운데에도 4월에는 땅과 나무가 열린다. 사방이 온통 푸르러지고 꽃이 활짝 피어나는 시기다.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해마다 설이 지나면 농사는 사실상 시작된다. 모종 하우스에 씨를 뿌리고 그 위에 터널을 씌우고 온기를 넣어주어 싹이 트고 자라게 하는 일들이 모두 농사의 시작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농사일은 겨울 동안 잘 발효시킨 거름을 밭에 내다 펴는 일로 시작된다. 밭을 갈아서 흙을 부드럽게 하여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는 일은 4월에 들어서야 가능하다. 우리 지역에서 인공적인 에너지를 쓰는 겨울 농사를 하지 않는 경우는 다 그러할 것이다.
온갖 채소 모종이 자라던 온상. 원혜덕 제공
땅을 부드럽게 갈아놓고 길러놓은 모종을 차례로 내다 심는다. 추위를 그런대로 잘 견디는 봄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파 등은 먼저 심는다. 날씨를 봐가며 더 이상 서리가 오지 않을 기온이 계속되리라 확인되면 그다음에는 껍질콩, 바질, 공심채 등을 심는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기온이 뚝 떨어지면 얼른 부직포를 가져다 작물들을 덮어줘서 얼어 죽지 않게 한다. 추위에 더 약한 고추와 가지, 옥수수 등은 아직 심지 않았다. 서리가 완전히 끝나는 ‘만상일’ 이후에 심는다. 우리 지역의 만상일은 5월5일 정도다. 농사란 끊임없이 하늘과 날씨를 살피며 이어가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등을 쓰지 않고 거름과 유기물로 땅의 힘을 길러서 농사를 지어왔지만 그 일은 지금도 쉽지 않다. 농장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거름을 만드는 일도, 제초하는 일도 다 큰일이다. 채소와 곡식 종류를 다양하게 기르기에 때를 다르게 하여 심는 일도 꽤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이른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일은 끊임없지만 대부분의 작물을 심고 가꾸는 봄에는 더욱 일이 많다. 그런 만큼 몸이 고단하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긴 봄날 여러가지 작업을 하면서 얻는 기쁨과 감동은 해마다 새롭다. 경이로움도 덜해지지 않는다. 농사일을 하여 농장을 꾸려가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그러하다. 화분이나 작은 텃밭에라도 무언가를 심고 길러본 사람은 이 느낌에 공감할 것이다.
작물을 기르며 대할 때 은은하지만 뚜렷하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농장 회원들과 나눌 기쁨이다. 나눈다고 해서 그냥 보내는 것은 아니고 생산자인 우리는 판매하고 소비자인 회원은 구매를 한다. 그런데도 나눈다고 말하는 것은 내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회원들도 그러한 표현을 한다. 우리는 거의 모든 농산물을 소비자인 회원과 직거래를 한다. 농사를 지어 거둬서 시장에 내다 파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생산자인 우리와 소비자인 회원이 직접 주고받는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씨앗을 넣을 때부터, 밭에 옮겨 심거나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늘 회원이 마음에 있다. 마치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즐거움과 설렘이 있다. 김을 매주고, 너무 가물면 물도 대주면서 이 농산물을 받을 회원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일하는 내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회원들과 우리 내외는 함께 땅과 생명을 보살피고 일구어나가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하면서도 문득문득, 저녁에 일을 마치고 들어와도 세상이 보인다. 세상은 죽이고 무너뜨리는 일로 가득하다. 이란에서 벌어진 전쟁, 그리고 날마다 끊이지 않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들을 대하다 보면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와 다른 한편에서, 생명을 기르고 살피는 쪽에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내가 서 있다는 것.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은 일이지만 지금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