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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길이 남는 애니메이션을 하나 꼽자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작품을 떠올립니다.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년 전 작품이지만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고, 질리지도 않죠.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사랑받아 왔고, 지금도 계속 사랑받고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작품임에도, 저는 꼭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이 순서를 마련해 봤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하여, 당신이 몰랐던 또 다른 깊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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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소녀 치히로는 부모님과 자동차를 타고 지방 도시로 이사를 가는 도중, 우연히 처음 보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는 주인장이 없는 음식점에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을 마구 먹어버리고, 그만 돼지가 되어버리죠. 치히로는 악몽처럼 어두워진 거리를 지나 거대한 온천장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이름을 빼앗아 지배하는 무서운 마녀 유바바가 운영하는, 신들을 위한 목욕탕이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동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유바바의 으름장을 들은 치히로는 돼지가 된 부모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일을 시작하게 되고, 계약과 동시에 이름을 빼앗겨 ‘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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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 온천장에 들어올 때 센을 도와주었던 하쿠 역시, 이름을 빼앗겨 자기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쿠는, 자신의 이름은 잊었어도 치히로만큼은 기억하고 있는 듯 보이죠. 어쨌거나 온천장에서 일을 시작한 치히로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고, 그나마 친절을 베푸는 존재는 말을 하지 않는 가오나시 정도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등장한 ‘오물신’을 센이 온 힘을 다해 씻겨주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신의 몸에 박혀 있던 자전거 핸들을 발견하고, 유바바 아래 온천장 식구들이 힘을 모아 엄청난 양의 오물을 뽑아냅니다. 사실 그 신은 오물로 뒤덮였던 거대한 강의 신이었고, 깨끗해진 강의 신은 센에게 요상한 경단 하나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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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업원들에게 사금을 뿌리던 가오나시는 점점 욕망을 먹고 거대한 괴물로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남은 건 센이 하쿠와 함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고, 돼지가 된 부모를 되돌려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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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일종의 아나키즘이 담긴 서바이벌 서사시처럼 느껴집니다. 10살 여자아이가 돼지가 된 부모와 떨어지고, 이름마저 빼앗긴 채 낯선 목욕탕에서 일을 하며 결국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니까요. 이 작품 이전에 지브리가 선보였던 〈원령공주〉는 당시 “사회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메가히트를 기록했고, 그다음 작품으로 〈센과 치히로〉가 나오자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본 영화 역대 흥행 수입 1위, 베를린 국제영화제 최고상,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등 수많은 권위 있는 상을 휩쓸었죠. 사실상 지금까지도 일본 영화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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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작품엔 독특한 태도가 있습니다. 왜 부모님은 돼지가 되고, 치히로는 목욕탕에서 일하게 되는지—별다른 설명이 없죠.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갑자기 돌입하는 이국적인 테마파크 같은 온천장은 도대체 왜 거기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업로드 이미지미야자키 하야오는 “10살 소녀가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지만, 어른의 눈으로 보면 이 작품엔 묘하게 어두운 일면이 비치기도 해서 사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감동을 강요하지도, 관객을 울리려 하지도 않는데도 알바 첫날부터 복닥거리는 스토리 구성 자체가 묘하게 흡인력이 있죠. 미국 공개 당시 시카고 선타임즈, 뉴욕타임즈, LA타임즈 등 주요 신문들이 전부 극찬했지만, 사실 “어디를 어떻게” 칭찬했는지보다 더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그 자체로 설득력과 매력을 발휘하고, 관객은 의문의 여지 없이 작품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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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자칫 “치히로가 새롭게 만난 존재들과 유혹 속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성장한다”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센이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센이 갖고 있던 잠재적인 힘”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업로드 이미지여기서 센의 능력의 근간은 ‘말’에 있습니다. 유바바가 지배하는 온천장에서 “아니다, 돌아가고 싶다” 같은 말을 해버리면 곧장 쫓겨나버립니다. 반대로 “여기서 일하겠다”라고 선언하면 유바바도 무시할 수 없게 되죠. 업로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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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무 말도 못하고 떠도는 가오나시는 어떤가요. 가오나시는 자신감이 결여된 현대 젊은이들의 공허함을 닮아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힘이 실리지 않은 공허한 말들이 세상에 넘친다고 했고, 말의 희미함 속에도 진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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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말하려는 주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도 읽힙니다. 첫째는 욕망으로 인한 파멸입니다. 치히로의 부모는 식욕을 이기지 못해 돼지가 되고, 사금의 유혹에 빠진 존재들은 가오나시에게 삼켜지며, 가오나시 또한 욕망을 먹고 먹으며 결국 욕망 덩어리의 괴물이 되죠. 하지만 그들과 대칭적으로 센은 음식에도, 사금에도, 가오나시의 유혹에도 큰 관심이 없습니다. 센이 붙드는 것은 오직 가장 소중한 것—부모님과 하쿠를 되찾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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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가장 소중한 것(그리고 그것을 붙드는 힘)입니다. 센은 전학 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의 편지를 통해 ‘치히로’라는 자기 이름을 붙잡고, 하쿠에게도 어린 시절 구해졌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죠. 제니바가 센에게 건네는 말들 역시, 결국 “무엇이 너를 너로 만드는가”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빛나는 머리끈은, 그 세계에서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증거이자 치히로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암시로도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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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기억이 갖는 의미입니다. 몸이 ‘신’이었던 강의 신조차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얻은 경단은 치히로에게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하쿠에게 먹이자 저주와 마법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열쇠가 되죠. 그리고 작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으로 인해 자연이 희생되는 문제 또한 은근히 건드립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 속에서 일본의 자연을 ‘깨끗한 자연’, ‘두려워해야 할 자연’, ‘변화하는 자연’ 같은 결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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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라면 일본 국민 대부분이 본 경험이 있다고 해도 될 만큼 국민적인 수준입니다. 지금도 지상파에서 방영하면 시청률 1위를 찍어버릴 정도로 인기고, 무심결에 채널을 돌리다 끝까지 보게 된다는 평이 지배적이죠. 하지만 지브리는 2014년 제작 부문 휴지기를 선언했고, 2017년부터 다시 장편을 만들기 위해 스태프를 모집했습니다. 지브리는 하이코스트·하이리스크·하이리턴 방식으로 제작해 제작비가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일본이 보통 3~8컷을 쓰던 제작 관행 속에서도, 지브리는 그 한계를 엄청난 물량으로 뛰어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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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는 기업으로서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상당하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업로드 이미지 미야자키 하야오도, 다카하타 이사오도 노동조합 출신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전 직원을 정사원으로 고용하고 복리후생을 중시했죠. 다만 문제로 자주 언급되는 건 후계자 육성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 찾기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뚜렷한 “계승”으로 이어지진 못했죠. 미야자키 고로도 몇 작품을 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을 잇는 인재’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습니다. 지브리에서 일했던 안노 히데아키 같은 인물들은 다른 형태로 애니계를 이끌었고, 지금은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같은 감독들이 각자의 이름을 날리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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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센과 치히로〉의 기획은 애초에 지금과 전혀 달랐다고 합니다. 오다 유지가 주연했던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을 본 미야자키 감독이 “쿨한 당시의 젊은이상”을 그린 작품을 만들 예정이었는데,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가 “차기작만큼은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하자”며 설득했다고 하죠. 그런데도 〈센과 치히로〉엔 어른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코드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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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 무대, 센이 일하는 온천장의 이름은 ‘유(湯)’—일본어로는 ‘아브라야(油屋)’라고 읽히는데, 말 그대로 기름집이라는 뜻입니다. ‘탕’을 유(湯)라고 부르는 데서 온 말장난이죠. 이건 다카하타 이사오의 아이디어였다고도 합니다. 어떤 해석에서는 ‘기름집’을 유곽(유각)으로 읽으며 돼지가 된 부모를 거품 세대의 상징으로, 치히로를 풍속산업에서 일하는 소녀로 그렸다는 설이 돌기도 했습니다. 업로드 이미지캐릭터들이 유녀를 모델로 하고 가명을 쓰는 점 등과 연결되며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미야자키 감독 역시 현대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유혹의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는 취지의 코멘트를 남긴 바가 있죠. “그럼 여러 가지 어색한 일을 하게 되니까요”라는 대답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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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즈키 토시오의 한마디가 이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캬바쿠라에서 일하는 여성 중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서툰 사람들이 많은데,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여러 손님들과 대화하다 점차 성격이 밝아지고 기운이 난다”는 말이었죠. 미야자키 감독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캬바쿠라’를 ‘목욕탕’으로 바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치히로가 목욕탕에서 수많은 신들을 대접하며 기운을 얻는 서사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이렇듯 소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고, 그 ‘가까움’이 지브리 판타지에 현대적인 감각을 깃들게 합니다. 남자들이 전부 개구리로 보였다는 일화, 여자들은 민달팽이처럼 느껴졌다는 설정 같은 것도 그 맥락에서 종종 언급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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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인기를 얻고 나서 재밌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일본·대만·중국 등지의 온천들이 “자기네가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건데요. 제작진이 직접 책을 통해 밝혔다고 알려진 건 일본의 도고온천이 모델이라는 점입니다(도쿠마서점의 로망 앨범 관련). 업로드 이미지저도 일본 전역을 여행하며 시코쿠 에히메현 마쓰야마의 도고온천에 가본 적이 있는데, 여긴 료칸이 아니라 공중목욕탕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전적인 느낌의 대중탕이고 건물이 무척 독특하죠. 물은 상당히 뜨거운 편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다카마쓰에서 차를 몰고 여기까지 갔던 이유도, 사실 〈센과 치히로〉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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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온천은 3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알려져 있고, 아스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겐지모노가타리 같은 설화에도 등장합니다. 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보짱)〉의 무대이기도 해서 ‘보짱 열차’가 지금도 운행하죠. 대만의 지우펀, 우라이라이 등이 영향을 줬다는 설도 있지만, 지브리는 공식 인정한 바가 없고 미야자키 감독이 인터뷰에서 부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온천 문화 자체의 역사와, 목욕탕 노동 구조(때밀이, 보일러, 손님 응대 등)가 작품 속 ‘센의 노동’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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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소한 설정들도 재밌습니다. 왜 신들이 목욕을 하러 왔을까요? 일본에는 신을 모셔 목욕시켜 건강을 빈다는 축제(후미즈키 축제 등으로 언급되는)가 있고, 미야자키 감독은 관련 다큐를 보며 “이 세상에서 이런저런 업무로 힘들게 사는 신들이 2박 3일 휴가를 내어 목욕탕에 온다면?” 같은 상상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단체로 온다면 어떨까—이런 발상들이 이미지로 이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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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나시는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이지만, 원래는 배경에 가까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야자키 감독이 “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를 고민하면서, 업로드 이미지자아가 희미하고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 싶지만 정작 자신은 뚜렷하지 않은 현대의 젊은이를 시각화해나가며 작품의 핵심 캐릭터 중 하나가 되었다는 거죠. 홍보 카피 “살아가는 힘을 깨워라”도 큰 반응을 이끌었습니다. 다만 미야자키가 스즈키 토시오에게 “왜 갑자기 가오나시로 홍보하냐”고 따졌고, 스즈키가 “치히로와 가오나시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하자 미야자키가 충격받으며 “이거 치히로와 하쿠 이야기잖아”라고 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가오나시에 너무 이끌린 나머지, 정작 중요한 축을 놓칠 뻔했다는 거죠.업로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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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장면. 치히로는 돼지들 중에서 어떻게 자기 부모가 없다는 걸 알아챘을까요? 온갖 추측이 있었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이 정도 경험을 가진 치히로라면 알 수 있다. 왜일까요? 하지만 그런 게 인생이에요”라는 식으로 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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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히로의 풀네임은 오기노 치히로. 여기서 치히로가 자기 이름의 한자를 잘못 쓰는 장면도 이야기거리가 됩니다. “일부러 틀렸다”, “하쿠가 마법을 걸었다”, “계약 당시부터 이름을 조금씩 잊기 시작했다” 등 해석이 나뉘는데, 유바바가 이름을 빼앗아 지배한다는 설정과 맞물리며 더 흥미로워지죠. 이 부분은 여러분 의견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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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일본에서 한동안 도시전설처럼 퍼졌던 해프닝이 있습니다. “극장판 마지막 장면에서 치히로가 기억을 잃는 다른 엔딩을 봤다”는 증언이 속출했던 일인데요. “한정된 극장에서만”, “공개 첫날만”, “VHS 버전에만” 등 소문이 커졌지만, 결국 2022년 1월 7일 지브리가 공식 트위터로 부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바다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같은 식으로 기억을 수정해나갔죠. 신기합니다. 심지어 “치히로가 교통사고로 임사체험을 겪는 이야기”라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으니까요. 작품이 ‘기억’과 ‘경계’를 다루다 보니, 현실의 관객 기억까지 흔들어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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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율, 치히로의 테마곡 〈어느 여름날〉을 작곡한 히사이시 조는 원래 오케스트라가 필요한지 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피아노 한 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편곡을 쌓아가다 보니 풀 오케스트라가 되었고, 공기감을 더하고 싶어 스튜디오가 아니라 콘서트홀에서 라이브로 녹음을 진행했다고 하죠. 단음의 피아노 멜로디, 현악기만 나오는 파트 같은 구성은 치히로의 차분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히사이시 조는 모든 미야자키 작품의 음악을 맡아왔고, 그중에서도 이 테마를 “최고의 걸작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두 사람은 83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때부터 인연을 맺었으니, 지브리의 역사와 함께해온 셈이죠. 미야자키 감독이 시나리오도 콘티도 없을 때부터 히사이시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히사이시는 그때부터 곡을 구상하는 패턴을 지금까지도 고수한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