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윌 비 블러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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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없이 시작하는 오프닝, 이미 이 영화는 결말을 말해요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정말 놀랍도록 대사 없이 흘러갑니다.

먼저 카메라는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봉우리와 미국의 땅을 보여주고, 곧바로 그 아래에서 홀로 움직이는 한 남자—다니엘 플레인뷰를 비춥니다.

그는 말없이 광산을 오르내리고, 추락하고, 다치고, 거의 기어오르듯 땅 위로 올라옵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그는 질질 끌며 끝내 다시 밖으로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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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메라는 다시 한 번,

미국의 땅하늘로 치솟은 봉우리를 보여줍니다.

저는 이 첫 시퀀스가 영화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느꼈어요.

  • 봉우리(상승)는 성공의 이미지

  • 미국의 땅은 아메리칸 드림의 토대

  • 그리고 그 땅 밑에 숨은 ‘검은 것’은… 결국 피처럼 흐르는 석유

성공을 위해 올라가려면,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려면, 다쳐야 하고

다쳐도, 또 올라가야 하는 사람.

플레인뷰라는 인간 자체가 이미 이 오프닝에 들어있어요.


“검은 피”라는 제목이 너무 정확해요

이 영화의 제목 There Will Be Blood는 성경 구절에서 왔죠.

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 “피”는 단지 피가 아니라,

땅에 흐르는 검은 피—석유로도 읽힙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석유와 함께, 미국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을 보여주죠.

바로 종교.

즉 이 영화는 두 인물을 통해 미국식 성공의 양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 석유업자 다니엘 플레인뷰 = 자본주의

  • 목사 일라이 = 종교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영화 속에서 빛과 그림자처럼 대칭적인 존재로 설계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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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종교는 결국 “욕망”이라는 뿌리를 공유해요

영화에서 플레인뷰를 비출 때 카메라는 가까이 다가가고,

일라이를 보여줄 때는 좀 더 멀어지거나 그림자 쪽의 구도로 연출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둘을 대비시키는 방식이 굉장히 노골적이면서도 우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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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둘이 결국 욕망으로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 플레인뷰는 신을 믿지 않지만, 성공을 신처럼 섬기고

  • 일라이는 신을 말하지만, 신을 성공의 도구로 사용해요

플레인뷰의 비즈니스 쇼와 일라이의 할렐루야 쇼가 닮아 있는 것도 그래서겠죠.

겉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사람을 설득하고 끌어당기고 지배하려는 기술”이란 점에서요.


영화가 처음으로 ‘대사’를 꺼내는 순간도 의미심장해요

초반의 오프닝은 행동만으로 흘러갑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진실하다는 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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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긴 무언의 시간 뒤에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말은,

플레인뷰의 “비즈니스”에 관한 대사입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영화는 말합니다.

“말은 언제든 거짓이 될 수 있지만

행동은 쉽게 속이지 못한다.”

플레인뷰가 아들을 곁에 두고 ‘가족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비슷해요.

하지만 그게 진짜 가족애라기보다는,

사업에 유리한 얼굴을 만들기 위한 선택일 뿐이라는 게 점점 드러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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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신앙도 결국 성공을 위한 장치로 소비되는 순간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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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뷰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성공 그 자체”예요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플레인뷰의 목표가 돈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해요.

그런데 저는 결국 이렇게 정리하게 됐어요.

플레인뷰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상태 자체입니다.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성공이 곧 그의 인생이 되는 사람.

그래서 끝내 성공한 뒤의 플레인뷰는 “승리”가 아니라 “종말”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죠.

영화에서 “I’m finished.”라는 말은 정말 무섭게 들립니다.

  • “내가 끝났다”는 말이기도 하고

  • “이제 성공 게임이 끝났다”는 말이기도 하고

  • 동시에 “이 영화도 끝났다”는 선언처럼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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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더 무서운 이유: 판단하지 않고 ‘그냥 보여준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남았던 감정은,

“이 영화가 나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어요.

성공만 쫓는 인간을 단순히 악마로 몰지도 않고,

성공을 포기한 인간을 게으르다고 비난하지도 않아요.

그 대신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성공을 쫓는 순간,

파괴되는 것들이 있고,

어떤 성공은 그 파괴 없이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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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차갑고 또 정확하게 보여주기만 해요.

마치 땅 밑의 석유가

‘효율적인 연료’이면서도

불이 붙으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처럼요.

욕망도 그렇잖아요.

적당하면 추진력이지만, 과해지면 주변을 다 태워버리니까요.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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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그 성공을 지탱하는 두 축—자본과 종교가

결국 얼마나 닮아 있는지도요.

끝나고 나면 마음이 묘하게 텅 비는데,

그 텅 빈 자리에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얼마나 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