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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세 남자가 등장합니다. 한 남자는 “상남자”, 한 남자는 “하남자”, 그리고 한 남자는 “노남자”.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셋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눈빛 한 번 제대로 섞지 않은 채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점이죠. 긴장감 넘치는 추격과 싸움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제가 보기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캐릭터가 또렷해서 더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 남자에 더해 칼슨(해결사)까지, 각자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이야기와 의미를 품고 있는지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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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고, 인물의 정신 상태를 의학적으로 분석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안톤 쉬거는 누가 봐도 “사이코” 쪽 스펙트럼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다만 저는 그 무시무시한 사이코 살인마 안톤 쉬거에게서—이상할 정도로—어딘가 “하남자스럽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지점을 ‘한 남자’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장면들을 다시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1) 안톤 쉬거: 사이코이자 “하남자”, 그리고 “원칙”이라는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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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쉬거는 무기로 쓰는 물건부터가 묘합니다. 이게 무기인지 뭔지 모를, 낯설고 기괴한 도구를 들고 나오죠. 그 자체로 상대를 방심시키고, 그 틈을 파고들어 얍삽하게 공격합니다. 정면 승부보다 ‘상대가 준비되기 전’의 빈틈을 노리는 방식. 이 영화에서 그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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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등장부터도 그렇습니다. 친근하게 말을 거는 아저씨에게 괜히 시비를 걸며 분위기를 움켜쥐려 하죠. 그리고 동전 던지기로 상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뒤, 은근슬쩍 계산도 안 하고 나가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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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는 “질문이 거슬렸나?” 싶었는데, 그의 ‘한 남자식’ 행동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오히려 반대로 의심이 듭니다. 처음부터 시비를 걸어 계산을 스킵할 명분을 만들고 들어온 건 아닐까—그런 쪽이 더 그답습니다.


그는 맡은 일을 “곱게” 수행하지 않습니다. 수수료를 떼고 분배하는 구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죠. 결국 돈을 더 먹기 위해, 심지어 의뢰인을 죽이는 쪽으로까지 기꺼이 미끄러집니다. 죽일 때조차 정면이 아니라 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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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황당한 건, 자기가 먼저 배신해놓고도 상대에게 도리어 잘잘못을 따지며 훈계하려 든다는 점이죠. 적반하장.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상대를 재단하는 태도. 너무 익숙한 “한 남자”의 문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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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의 집 냉장고 문을 벌컥 열고 우유를 꺼내 마십니다. 죄책감도, 예의도 없습니다.

“얘기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들어도 멈추지 않고, 자기가 듣고 싶은 답이 나올 때까지 같은 말을 강압적으로 반복합니다. 대화의 목적이 소통이 아니라 굴복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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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하남자스러운 면모”라면, 그에게 붙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원칙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룰을 따르는 사람’처럼 포장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기죠. 안톤 쉬거가 지키는 원칙이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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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엔 그의 원칙은 아주 단순합니다.

  • 정면 승부를 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합니다. 상대 뒤를 노리고, 예측 못할 타이밍에 공격하고, 신발을 벗어 소리를 줄이고, 총 대신 ‘조용한’ 도구를 선호하죠. 무장한 상대를 피하고, 상대가 무장하기 전에 먼저 덮칩니다. 보안관에게 순순히 체포된 것도 “순응”이 아니라, 무장한 상대와의 대치라는 리스크를 피하고 기습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 불필요한 변수를 싫어한다.

    트레일러 사무실에서 화장실 물 내린 소리가 들리자 자리를 피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마주치는 건, 그에게 불필요한 위험이니까요.

  • 교란하고, 흔들고, 틈을 만든다.

    약국 앞에서 차를 폭발시켜 혼란을 만들고 유유히 약을 줍습니다. 동전 던지기로 상대의 마음을 흔든 뒤 계산을 스킵합니다. 추적을 피하려고 차도 주기적으로 바꿔 타죠.

  • 철저히 ‘자기 이익’ 중심이다.

    이익에 방해가 되면 가차 없이 제거합니다. 대화 방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듣지 않습니다. 말합니다. 협상하지 않습니다. 통보합니다. “제안은 오직 나만 한다.” 타인이 제시하는 협상은 받아들이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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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균열이 생깁니다.

그는 조용히 처리하고 시선을 끌지 않으려 하면서도, 찰랑거리는 단발 헤어스타일만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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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하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가꾸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 확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안톤 쉬거는 “나는 잘할 것이다, 나는 잘될 것이다” 같은 자기 확신을 늘 몸에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확신이 그를 당당하게 만들고, 동시에 더 위험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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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위생에 집착합니다. 손을 꼼꼼히 씻고, 도주 중에도 차를 세차하고, 샤워커튼으로 튀는 피를 막고, 상처를 소독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범죄자라는 신분상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그에게는 ‘습관화된 생존 기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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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는 칼슨에게 이렇게 비웃듯 던집니다.

“지금까지 따른 룰 때문에 이렇게 됐다면, 그 룰이 무슨 쓸모가 있나?”

저는 이 말을 두 겹으로 읽게 됩니다.


  1. 너는 잘못된 룰을 따랐다. 내 룰이 더 우수하다.

  2. 혹은 반대로 룰 같은 걸 지켜서 될 게 있나? 결국 결과만 챙기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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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는 동전 던지기로 목숨을 좌우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쉽게 배신하고 적을 만들며, 즉흥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남습니다.

이 사람에게 정말 원칙이 있긴 한가? 아니면 ‘원칙’이라는 말로 자기 폭력을 꾸미는 건가?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더 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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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자신의 원칙을 그렇게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면, 초록불을 보고 당연히 안심하고 직진하다 큰 사고를 당한 뒤—자신이 내뱉었던 말과, 자신이 믿던 룰과, 자신의 확신에 대해—조금은 되돌아보게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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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게서 ‘반성’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칙을 지킬수록 더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역설만이 남죠. 누군가에게는 명확한 원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혼돈과 예측 불가능으로 보이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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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르웰린 모스: 무모함과 따뜻함이 함께 있는 “상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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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쉬거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이 르웰린 모스입니다. 저는 여기에 “상남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봅니다.

르웰린은 물을 달라던 남자가 자꾸 마음에 걸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거래 현장이 위험한 걸 알면서도, 목숨이 위험할 걸 알면서도, 물 한 통을 들고 다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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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해 보이지만 따뜻함이 있죠. 그리고 이런 무모할 정도의 여유는, 어떤 종류의 자신감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난 안 죽는다. 난 살아 돌아온다.” 전쟁터를 겪은 사람의 사고방식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상남자는 작은 것에 쉽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가방에 200만 달러가 있어도 “음” 하고 맙니다. 총알이 박혀도 대수롭지 않은 듯 움직이죠. 셔츠를 입으로 푹푹 찢어 붕대로 쓰는 장면은—말 그대로—말이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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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내 할 일을 한다”는 얼굴로 버팁니다. 사이코 살인마가 쫓아와도, 총을 맞아도, 사냥개가 달려와도, 침착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입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담담히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식이죠.

또 하나. 그는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제안이라면 고집을 꺾을 줄도 압니다. 제가 보기엔 르웰린이 칼슨이 머무는 호텔에 전화한 이유는, 결국 협상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다만 안톤이 전화를 받으며 굴욕적인 제안을 던지죠. “넌 어차피 내가 살려두지 않을 거다. 네 목숨이라도 구걸해라.”

상남자는 그런 제안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부상당한 몸 상태에서도, 걸어오는 싸움을 받아들이기로 다시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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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아내를 생각합니다. 르웰린이 칼슨에게 전화한 결정적 이유도, 아내의 안전 때문이었을 겁니다. 고집과 자존심이 강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이 먼저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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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곁에 없는 사이 유혹이 다가와도, 결혼반지를 꺼내 보여주는 장면은—짧지만—확실합니다.

그는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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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굴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그를 덮친 건 안톤 쉬거가 아니라 멕시코 갱단의 집단 습격이었죠. 그리고 그 마지막은 보여주지도 않은 채, 이미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처리됩니다. 허무합니다. 잔인할 정도로 허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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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얄미운 장면이 남습니다.

안톤 쉬거는 자기가 르웰린을 처리한 것도 아니면서, 와서 돈가방만 쏙 챙겨가 놓고, “약속을 지키러 왔다”는 얼굴로 홀로 남은 아내에게까지 찾아옵니다. 생각할수록 너무 “한 남자”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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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기대한 안톤과 르웰린의 최후 결전은 없었고, 그래서 허무함은 더 크게 남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이 모두 “운명”을 믿는 자들이었다고 느낍니다.

다만 방향이 달랐죠.

  • 안톤 쉬거는 운명을 기대하고, 결정하려는 자였고

  • 르웰린은 운명을 기다리며, 받아들이려는 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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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믿고 자만한 안톤은 사고로 거의 죽을 뻔하고, 다가올 운명을 받아내려 한 르웰린은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허무함을 보고 있으면, 운명이란 대체 무엇인가—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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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남자: 애드 톰 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진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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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은 마치 노인의 문제를 다룬 다큐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전혀 예상과 다르죠. 우리는 자연스럽게 젊은 두 남자의 피튀기는 싸움에 몰두합니다. 제목처럼 “노인이 낄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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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곱씹어보면, 이 영화는 노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해 노남자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의 이름은 애드 톰 벨. 그리고 제목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그일지도 모릅니다.

노남자는 25살의 어린 나이에 보안관이 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같은 길을 걸었죠. 보안관이라는 일에 꿈과 자부심이 대단했고, 헌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악과 싸우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무의미한 사이코 범죄 앞에서 “그냥 목숨을 내던지고 싶진 않다”는 마음 또한 분명합니다.

함께 수사하는 부보안관은 의욕은 넘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보입니다. 반면 노남자는 말과 행동이 간결하고 여유롭습니다. 대충 둘러보기만 해도 무엇이 벌어졌는지 꿰뚫는 베테랑이죠. 익숙한 표정으로 현장을 파악하고,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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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굳이 앞장서지 않습니다. 젊은이에게 경험을 주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노인은 쓸데없는 데 힘을 빼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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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특징은 상식적이고, 현명하며, 노련하다는 것.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시대의 가치관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념이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 신념이 더 이상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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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이 있는데 총알은 없고, 자물쇠에는 뻥 뚫린 구멍만 남아 있고, 이해 불가능한 방식의 폭력이 일상처럼 나타납니다. 노남자가 쌓아온 상식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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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점점 혼란스럽고, 지치고, 무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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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는 칼슨(해결사)도 함께 언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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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건방진 젊은이처럼 보이지만, 제가 보기엔 오히려 젊은이보다는 ‘노인에 가까운’ 결을 가졌습니다. 노련하고, 나름의 신념과 원칙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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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충분히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라는 얼굴로 유쾌한 방식의 해결을 시도하죠. 돈가방을 찾고도 바로 챙겨 떠나지 않습니다. 안톤 쉬거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래서 안톤이 칼슨을 비웃었을 겁니다.

“그딴 걸 지키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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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남자도, 칼슨도, 상식과 원칙의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안톤 쉬거 같은 존재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그를 “환영 같다”고 말하죠.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존의 질서 바깥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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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남자는—관망만 하던 사람처럼 보이면서도—문을 열고 악을 마주하려 합니다. 자물쇠 구멍에 비친 실루엣을 보고 총을 빼어드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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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곳에 있던 건 그의 공포가 만들어낸 환영이었죠.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동시에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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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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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가 전날 밤에 꾸었다는 꿈 이야기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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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꿈: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돈을 주었는데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돈이, 젊은이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그 돈이기도 하고, 그가 젊었을 때 중요하다고 믿었던 가치관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것들. 더는 되돌릴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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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꿈: 아버지가 말을 타고 횃불을 들고, 자신을 앞질러 갑니다.

그가 존경했던 아버지라면, 이 암울한 세상을 따뜻하게 밝혀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기대와 안타까움이 겹쳐진 꿈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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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했고, 그는 늙었고, 그가 믿던 질서는 더 이상 질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무력해지고, 두려워지고, 결국 멈춥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이, 그제야 제목 그대로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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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운명과 우연: 무거운 단어가 가볍게, 가벼운 단어가 무겁게

운명과 우연은 서로 반대처럼 느껴집니다. 운명은 무겁고, 우연은 가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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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운명이 오히려 우연처럼 찾아옵니다.

빗나간 총알, 놓쳐버린 사냥감, 발견했던 행운이 아니라 불행이었던 돈가방. 호의가 아니라 ‘살의’가 되어 돌아온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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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웰린에게 다가온 운명은 언제나 우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미할 수도 있는 가정을 하게 됩니다.

그때 사냥감을 놓치지 않았다면, 돈가방을 챙기지 않았다면, 물을 갖다 주러 가지 않았다면, 행선지가 흘러나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안톤 쉬거와 르웰린 모스가 한 번 더 최후의 결전을 벌였더라면—과연 어땠을까. 저도 정말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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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에서 허무하게 끝난 르웰린이, 다음 생에는 우주적 상남자로 다시 태어나 지구를 방문한다면…

부디 그때는 안톤 쉬거부터 먼저 찾길 바랍니다.